유럽 역사 속 중세란 거대한 로마 제국 시대가 저물고 신흥 국가가 생겨나면서
그리스도교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르네상스 시대가 오기 전까지 1000년 넘는 오랜 시간을 아우른다.
화가 개인의 독창성이나 작품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신
신에 대한 경배와 찬미가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에, 대부분 작품은 제작자를 알 수 없다.
또 글을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그림으로 성경을 전달하며 성서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시대별 양식은 건축 양식의 변화를 기준으로 네 가지로 나누며
교회가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초기 그리스도교를 제외하고 각 건축 양식이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 중 다른 세 가지 양식의 바탕이자 서양 건축사의 시작인 초기 그리스도교는 다음과 같이 발전했다.
로마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오랜 시간 다양한 신을 섬겼다.
곧 나라가 안정되고 황금기를 맞이하자 선봉에 선 믿음직한 통치자인 황제를 신과 같이 섬기다가
긴 전쟁을 여러 번 거치면서 나라의 멸망이 가까워졌을 때 사람들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제국의 오랜 철학 대신
죽은 다음의 내세를 믿기 시작한다.
로마 제국 초기,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되어 아직 입지를 다지지 못한 그리스도교는 이 시점부터 피지배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한다.
그리스도교는 내세와 부활을 믿는 종교로써 시신의 화장보다 매장을 선호했는데
특히 종교적 성인을 지하에 묻고 그 위에 대규모 예배당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법에 따르면 죽은 사람은 로마 성안에 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카타콤이라는 넓은 지하 묘지를 만들었다.
관을 안치할 수 있는 좁은 방,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와 회랑을 갖춘 거대 건축물이었으며
묻힌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가에 따라 묘실 입구의 파사드를 장식하거나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카타콤은 이후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지정되어 대체할 수 있는 매장법이 생길 때까지 이어진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1세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며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한 후
3세기까지 시민들의 대형 공공시설이었던 바실리카는 용도를 변경해 교회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법정과 교역소로 사용하던 구조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실용성이 가장 큰 이유였다.
종교적인 장엄함을 보여주기 위해 교회당 내부는 높은 창과 모자이크로 장식했는데
새로 짓는 교회가 늘어나면서 덜 마른 회벽 위에 그림을 그려 굳히는 프레스코 장식도 늘어났다.
곧 로마 제국이 동과 서로 갈라지며 대규모 수용만을 목적으로 했던 교회 건축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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