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시미술
미술사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미술 자료는 구석기 시대에 그린 동굴 벽화다.
사냥하는 사람들과 동물을 주로 그렸는데, 정확한 표현보다 동물이 주는 인상을 강조해서 표현한 추상화에 가깝다.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중 하나는 프랑스 남쪽부터 스페인 북쪽에 걸쳐 나타나는 동굴 벽화로
프랑스의 라스코 벽화와 스페인의 알타미라 벽화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서유럽에 분포된 동굴 벽화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a. 부족의 우두머리 또는 주술사를 제외한 사람은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b. 이야기나 상황을 포함하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동물이 하나씩 나열된 것처럼 그렸다.
c. 동물들은 서 있거나 죽은 상태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한편 동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원시 미술의 다른 갈래도 있다.
역시 다양한 동굴 벽화가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조각으로 더 잘 알려졌다.
a. 그림보다 조각이 더 많이 발견된다.
b. 조각의 재료는 사슴뿔이나 매머드 상아, 흙과 돌 등 다양하다.
c. 서유럽 양식에 비해 동굴 벽화에 사람이 많이 그려졌는데, 특히 몸의 각 부위를 강조한 여인상이 많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발견해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이름 지은 돌 조각은 두 번째 유형을 대표하는 조각이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이목구비가 묘사되지 않았고 가슴과 배, 엉덩이가 강조되어 여신상으로 추측한다.
비슷한 형태를 일부 벽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 방법과 주재료를 바탕으로 두 가지 원시 미술을 구분했을 뿐
이 시대 미술은 모두 원하는 바를 소원하는 대상이자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담겼다고 해석한다.
수렵과 채집 시대를 지나 농경 정착 사회가 시작되자 원시 미술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한다.
농경 사회에 들어서면서 곡식을 저장할 토기나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벽돌 제작 등 실용적인 미술품을 만들었고
각 부족이 섬기는 신을 조각하는 솜씨도 훨씬 더 정교하며 사실적으로 변한 것이다.
원시 미술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고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현대 미술사에 꾸준히 재평가되고 있다.
2. 고대 이집트 미술
유럽에서 고대란 그리스의 탄생부터 로마 제국이 멸망한 15세기 중반까지를 의미한다.
이 시기 미술 사조는 가장 크게 번성한 각 나라와 문명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이집트, 그리스, 로마 미술이 대표적이다.
그 중 이집트 미술은 가장 먼 옛날부터 완성도 높은 기술과 놀라운 규모를 가지고 존재했다.
이집트 미술은 대개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에서 찾을 수 있다.
파라오의 시신을 장식한 가면, 관, 함께 묻은 부장물과 피라미드 벽면에 새긴 여러 가지 신화적 그림은
이집트 사람들이 사후세계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파라오를 위한 미술은 아름다움보다 실제를 정확하게 담고자 했다.
사진 같은 정확성이 아닌 평면에 눈으로 본 모든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피라미드 벽화가 가장 대표적이다.
얼굴 윤곽이 드러나는 옆얼굴에 정면을 보는 눈동자와 상반신, 발 모양을 보여주기 위해 옆으로 선 다리는
방향은 전부 다르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특징을 모두 한 화면에 그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 화가는 다음 세 가지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했다.
a. 정면성
주로 조각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팔을 몸 옆에 붙인 부동자세에서 정면을 본 사람 조각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b. 이상화
왕과 왕비, 귀족 등 표현하는 대상이 사후세계에서 부족함 없는 완벽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표현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그 결과 회화와 부조에 나타난 많은 사람이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다.
c. 종합성
보이는 것이 아닌 아는 것을 그렸다.
대표적인 작품은 네바문의 정원으로 정원의 구조와 어떤 종류의 식생이 자라고 있는지 정확히 보여주기 위해
정원은 위에서 아래로, 나무는 아래서 위로 보이는 형태를 그렸다.
연못 속의 물고기도 옆모습을 그려 종의 크기와 형태, 색을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
약 3000년 이상 지속되던 이집트 미술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새로운 왕조인 아마르나 시대였다.
이집트 역사상 최고 전성기였던 아멘호테프 3세가 죽은 뒤 왕위를 이은 아멘호테프 4세는 스스로 이크나톤으로 개명했다.
이크나톤이란 아톤의 빛이라는 뜻인데 수십 세기 동안 이집트를 지배했던 태양신 대신 새로운 신과 새로운 종교의 등장을 알린 것이기도 했다.
원래 이집트는 신의 수호를 받는 파라오가 나라를 지킨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집트가 융성할수록 신에 대한 믿음이 점점 커졌고 신을 섬기는 사제들이 파라오만큼 큰 권력을 가졌다.
아마르나 시대에 이르면 사제의 힘은 더욱 강해져서 파라오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아멘호테프 3세가 수명을 다하기 전 신전을 겨눈 견제를 시작했고
그 아들인 이크나톤 대에 이르자 아예 사제들의 영향력이 채 미치지 못한 아비도스로 수도를 옮겨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태양신에 대한 숭배가 커질수록 신전과 사제의 역할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힘과 지식을 가진 사제 계급만 만날 수 있는 태양신 대신 아톤이라는 공정한 신을 새로 세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사제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사제의 역할도 제사를 지내는 형식적인 활동만 남게 되었다.
이크나톤은 그 후 왕실 전반에 걸쳐 지나치게 이상적인 풍습을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이크나톤의 의지가 반영된 동시대 이집트 미술 사조를 아마르나 예술이라고 하는데
거대하고, 경직되고, 이상적인 외관 대신 자연스럽고 사람다운 움직임을 표현하는 자연주의 미술이었다.
파라오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어 이크나톤과 왕비 네페르티티가 아이들에 둘러싸인 그림이나
이목구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흉상 등 이전 시대 이집트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크나톤의 개혁은 그가 죽고 아들이 즉위하는 즉시 실패로 끝났다.
기회를 엿보던 사제들이 어린 파라오와 대적해 권력을 되찾자 수도와 궁정 체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따라서 이후 이집트 미술은 다시 엄격한 규칙과 신 중심의 작품이 주류가 된다.
'서양 미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세 미술 : 로마네스크 미술 (0) | 2023.01.14 |
---|---|
중세 미술 : 비잔틴 미술 (0) | 2023.01.06 |
중세 미술 : 초기 그리스도교 (0) | 2023.01.05 |
고대 미술 : 로마 미술 (0) | 2022.11.13 |
고대 미술 : 그리스 미술 (0) | 2022.10.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