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미술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미술사에서 의미하는 그리스 미술이란, 에게해를 중심으로 다양한 소수 민족이 등장하던 전쟁 시대가 끝난 시점부터
그리스 내륙에 도시 국가인 폴리스가 등장해 전쟁 시대의 신과 사람, 그 사이에 있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낸 세대를 뜻한다.
이전 시기의 미술은 같은 그리스 땅에서 시작했지만 아직 그리스 도시 국가가 아닌
때마다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크레타와 미케네의 이름을 딴 독자적인 문명으로 본다.
그리스는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다양한 소수 민족이 공존하는 가운데 남쪽에 있는 크레타섬이 가장 빨리 패권을 잡았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이집트와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농경 정착이 가능한 평야를 가진 섬이었기 때문이다.
옆으로 긴 섬인 만큼 처음에는 동과 서로 세력이 나누어졌지만
기원전 2000년 즈음 섬 중심에 위치한 크노소스를 기점으로 중앙집권화에 성공한다.
그리스 신화로 잘 알려진 미노스가 크레타섬의 왕이 되었고 풍부한 자원과 외세의 침입이 어려운 지형 덕분에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에게해에서 가장 큰 섬인데다 육지와 육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를 이용한 무역을 거의 독점할 수 있었다.
크노소스에는 미로와 같이 복잡한 구조의 거대한 궁전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 시기 크레타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채광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개방적인 구조였다.
예술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에게해의 중심이었던 크레타는 기원전 1600년경이 되자 북쪽에서 빠르게 세력을 늘린 미케네에 의해 멸망한다.
미케네는 기본적으로 먼저 발달한 크레타 문명을 많이 닮았지만 건축 양식에서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크레타가 가운데 넓은 마당을 두고 사방으로 열린 구조를 선호했다면
미케네는 요새와 같은 방어적인 형태의 구조를 바탕으로 힘을 과시하는 거대한 양식을 사용했다.
도자기 등 일부 사물에 인물상을 넣어 기리기 시작한 것도 미케네 시대에 들어서였다.
미케네 문명의 종말에 대해 지금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대부분 이 시기 북쪽 지방의 도리아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전쟁으로 인해 멸망했다는 학설이 보편적이다.
이렇게 크레타와 미케네 문명의 시대가 저물고 본격적인 그리스 미술이 등장하는데
시기별 특징에 따라 기하학기, 아케익기, 고전기, 헬레니즘기 네 가지로 나누었다.
1. 기하학 시대
기원전 10세기~8세기, 그리스 본토가 아직 자연재해와 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암흑기를 말한다.
거대하고 방어적인 미케네 문명의 유산들이 대거 파괴된 후
자본과 인력이 있어야 하는 건축물 대신 실생활에 사용하는 도자기와 신전에 바칠 작은 조각상을 만들었다.
도자기에 그린 여러 가지 도형이 반복적인 하나의 패턴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사용했다고 해서 기하학기라고 이름 붙였다.
2. 아케익 시대
도시 국가인 폴리스가 등장하고 정치, 경제가 모두 안정되자 삶에 꼭 필요한 도자기나 신전에 바칠 조각상에 꾸밈을 더하기 시작한다.
평면화는 패턴화된 무늬에서 사람이나 동물, 식물 등 구체적인 실체를 가진 무늬로 발전했고
실제 사람 크기의 조각상이 등장해 그리스어로 각각 소년과 소녀를 뜻하는 쿠로스, 코레 상이 제작됐다.
특히 쿠로스와 코레 상은 인간의 이상적인 미를 표현하고자 만들었기 때문에
삶에 필요한 도구가 아닌 보고 즐기는 미술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사람 모양을 본뜬 대부분의 조각상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데 이를 아케익 미소라고 한다.
3. 고전 시대
기원전 499년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하던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에 전쟁이 시작됐다.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던 이오니아가 독립 전쟁을 일으키자
그리스의 가장 큰 도시 국가인 아테네가 군사를 보내 페르시아를 견제한 것이다.
보복을 위해 페르시아는 두 번에 걸쳐 육지와 바다를 통해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번번이 대패하고 만다.
일평생 정복 전쟁에 몰두했던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죽고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가 즉위했지만
그리스와 스파르타 동맹군의 놀라운 해상 전투력 앞에 결국 그리스 정복을 완전히 포기한다.
결국 바닷길을 이용한 무역에서 승기를 잡은 그리스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며 국력이 절정에 치닫는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철학가들도 이 시기에 나타났다.
아케익 시대에 볼 수 있었던 경직된 자세 대신 긴장감이 다소 줄어 한 발에만 체중을 싣는 콘트라포스토 자세가 등장했고
고대 그리스 미학인 캐논, 즉 황금비를 적용한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을 조각으로 재현했다.
다만 시대적 호화로움을 고려해 이 시기 조각은 대개 청동으로 제작되어 갖은 금속과 광물로 섬세하게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반복된 전쟁으로 불타 없어지거나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녹이는 바람에 전해지는 것은 로마 시대 제작된 모작이 대부분이다.
4. 헬레니즘 시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약 10여 년의 원정을 거친 끝에 사망하자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까지 영역을 넓힌 그리스 미술은 각 지방의 영향을 받게 된다.
표현의 자유로움은 화려함으로 발전해서 조각상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신과 영웅 그 자체보다 극적인 이야기의 장면을 사용했다.
따라서 헬레니즘 시대 조각상에는 단순한 서사뿐만 아니라 인물이 가진 감정이 짙게 나타난다.
이 시기 대표적 작품은 라오콘과 니케 여신상을 꼽을 수 있다.
a. 라오콘
트로이 사제인 라오콘이 아테네에 바친 목마를 향해 창을 던지자
이에 노한 여신이 바다뱀 두 마리를 보내 사제와 두 아들을 공격한 신화 속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이미 빈사 상태에 빠진 첫째 아들, 사투를 벌이고 있는 둘째 아들, 그리고 뱀독에 죽어가는 라오콘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세 사람과 거대한 뱀 두 마리가 얽힌 장면을 실제 사람 크기와 흡사하게 조각했기 때문에 조각의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신화를 주제로 한 조각에서 볼 수 있었던 용맹함과 초월적인 모습과는 대조되는 절망감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헬레니즘 시대 조각의 정수로 꼽힌다.
b. 니케 여신상
고전 시대 여신상과 달리 콘트라포스토가 아닌 바닷바람을 느끼며 앞으로 몸을 내민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 활짝 펼친 날개, 바람에 날리는 옷의 주름을 격렬하게 표현해서
머리와 양팔, 한쪽 다리가 소실된 조각상임에도 기쁨과 환희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황금기 끝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그리스는 기원전 1세기가 되면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황제를 앞세워 엄청난 성장세로 지중해 전체를 흡수하다시피 세력을 넓힌 로마 제국에 의해 차츰 흡수되어 간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를 파괴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수용해 모방하거나 다른 색을 더해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시킨 로마로 인해
그리스 예술은 오늘날까지도 서양 미술사의 가장 큰 뿌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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