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는 한국 회화 역사에서 가장 다양한 화풍과 많은 작품이 배출된 시기로 화원과 문인 화가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멸망한 고려의 불교는 억제하고 새로 세운 조선의 근간이 되는 유교를 숭상하는 억불숭유 정책이 등장하며
승려 화가들의 활동은 크게 줄어든다.
이 시기부터 대부분 작품에서 그린 이를 정확히 밝히기 때문에 시대마다 대표적인 인물을 따라 회화 사조를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초기에 확립된 네 가지 화파가 점진적인 변화를 거치며 걸출한 화가를 배출하면서 조선 후기까지 지속된다.
1. 곽희파와 안견파
안견과 강희안이 대표 주자로 꼽히는 조선 초기 회화는 각각 곽희파와 마하파로 나뉜다.
그중 북송 시대에 활동했던 이성과 곽희의 앞 글자를 따 이곽 화풍이라고 불렀지만
화풍의 개성이 좀 더 확실한 곽희의 이름만 써서 곽희파 화풍이라고도 한다.
곽희파 화풍의 몇 가지 대표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a. 물을 섞어 구름처럼 보이는 황토 산을 배경으로 그린다.
b. 붓 자국이 보이지 않게 붓 자국의 끝부분을 이어서 그린다.
c. 산의 맨 아랫부분을 칠하지 않고 밝게 남겨 조명 효과를 낸다.
d. 게의 발톱처럼 생긴 붓 자국 해조묘를 써서 나뭇가지와 소나무 잎을 뾰족하게 그린다.
안견은 이런 곽희파 화풍을 자기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한 후 새로운 안견파 화풍으로 발전시켰다.
안견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사시팔경도에서 다양한 안견파 화풍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사시팔경도란 이른 사계절의 모습과 한창때의 사계절을 계절별로 각각 두 폭씩 그려 총 여덟폭이 짝을 이루는 그림 전부를 뜻한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조선 초기 안견의 사시팔경도이며,
그림이 가진 화풍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a. 붓 자국이 보이지 않게 붓 자국의 끝과 끝일 이어서 그린 필묵법
b. 게의 발톱처럼 생긴 해조묘를 써서 뾰족하게 그린 나무와 솔가지
두 가지 특징은 기존 곽희파 화풍에서 그대로 전해 내려왔으며
a.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치우쳐 중간 즈음에 사물이 놓인 편파 구도
b.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대각선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도
c. 여백을 두고 여기저기 떨어져 있지만 한 눈에 봤을 때 이질감 없이 어울리는 요소
d. 물이나 안개로 채운 그림 사이사이의 넓은 공간
e. 테두리를 먼저 그린 후에 색을 채워 넣는 구륵법이 다양하게 구사된 색채
위 다섯 가지 특징은 안견이 특징적으로 크게 발전시켜 이후 16세기 중엽까지 안견파 화풍이 크게 유행한다.
16세기 안견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작품에서는 짧은 점과 선으로 면을 채워 질감을 표현하는 단선점준법이 추가되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 마하파
남송 시대 직업 화가들의 특징적인 화풍을 뜻하는 원체화풍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마원과 하규의 앞 글자를 딴 마하파는
강남 지방의 따뜻한 날씨와 높지 않은 나지막한 산, 비가 많아 여기저기 이름난 강과 호수도 많은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발달했다.
그래서 풍요로운 자연환경과 이를 누리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재로 했다.
a. 오른쪽과 왼쪽 중 한쪽으로만 아주 치우친 일각 구도
b. 안개를 가득 채워 습한 공기 속에 거의 잠긴 원경
c. 나무를 도끼로 찍어낸 면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부벽준으로 표현된 산과 절벽
d. 근경에는 굴곡이 심한 나무가 존재
대표작으로는 이상좌의 송하보월도가 있다.
화면의 왼쪽 아래로 치우친 일각 구도에 가지가 여러 번 꺾인 나무가 화면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어
마하파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하파 화풍은 곽희파 화풍과 더불어 조선 초기 양대 산맥과 같은 화풍이었지만 서서히 후기 절파 화풍에 흡수되어간다
3. 절파 화풍
조선 초기 산수화의 대표주자가 안견이었다면 문인 화가로서 강희안이 가장 이름을 알렸다.
강희안의 호 인재가 찍힌 그림 고사관수도는 조선 초기임을 감안했을 때 대단히 과감한 화풍을 가지고 있다.
강희안은 지체 높은 집안에서 나고 자라 나라의 관료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생 강희맹과 더불어 조선 초기 사대부 중에서도 글과 그림 모두 대단히 높은 수준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또한 1462년 명나라에 파견되는 등 중국 문물을 한발 먼저 접할 기회가 잦아
당시 조선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절파 화풍도 쉽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절파는 중국 절강성에서 시작한 화풍으로 대진과 그를 추종하는 여러 화가를 통해 만들어졌다.
마하파에 다음과 같은 특징이 더해진 화풍으로 붓이 만들 수 있는 시각적인 효과에 집중했다.
a. 근경, 원경에 중경을 더해 꽉 찬 구도
b. 붓 자국이 거칠면서 굵고 진한 획
그러나 진취적인 일부 사대부들 사이에서 작게 향유되다 사라질 뻔했던 이 화풍은 16세기 말 유행이 된다.
중국의 시조와 크게 구분되는 조선만의 특징은 배경보다 인물이 강조되는 소경 산수 인물화를 더 많이 그렸다는 점이다.
4. 원체 화풍
명나라의 궁정 화원, 즉 직업 화가들 사이에서 유행한 화풍을 말한다.
왕실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좋아하는 그림 또한 바뀌었기 때문에 원체 화풍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특징은 없다.
그러나 대개 왕실 행사나 궁정 안의 주요 인물을 그리는 데 특화된 화원들이니만큼
정교한 붓의 사용과 다양한 색 활용에 뛰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5. 미법 산수 화풍
미법산수란 11세기 중국 북송의 미불이 만든 화법으로 미씨 집안의 성을 따서 이름 붙였다.
a. 낮은 산
b. 넓게 깔린 짙은 안개
c. 대각선 구도
d. 물을 많이 먹은 옅은 청록색으로 칠한 바탕
e. 붓을 눕혀 찍은 점으로 산과 바위, 나무를 표현
종이 위 공간을 넓게 남겨 안개처럼 보이게 한 이 기법은 미불 시대의 사대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많은 기교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사대부다운 간결하고 정적인 정취를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면 전체에 습기가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화법은 대개 여름 산수를 그릴 때 사용했다.
이 특징 그대로 조선으로 들어오며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8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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